( )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?
여기 ( )이 있다. 우리는 ( )을 만든다. ( )한다.
( )making은 판화의 영문명인 printmaking에서 출발한다. 단어의 합성 과정을 되짚어 보면, ‘프린트 print’와 ‘만들기 making’가 ‘printmaking’으로 합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. 대부분의 판화 기법 과정에는 원판(matrix)에 행위(action)가 가해지고 그에 따라 결과물인 프린트(print)가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. 결과물인 print는 원본체를 갖고 복제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써 오랜 시간 기능해 왔다. 그 과정에서 print는 무수히 많은 객체와 소통하면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형태와 의미를 조금씩 바꿔 나갔다. print는 결국 원본체의 결과물에서 출발한 하나의 움직임이다.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운동을 ‘print’라는 하나의 단어로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?
여기 print가 있다.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닌, 그 과정과 결과에서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print는 새로운 층위의 덧칠과 압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. print에 ( )의 레이어를 덧씌우자. 철학자 알랭 바디우(Alain Badiou)는 ‘공백’이 새로운 진리를 위한 빈자리라고 했다. 이 자리는 비어 있기에 언제나 유동적으로 채워질 수 있다. 공백의 층위인 ( )은 기존의 print보다 훨씬 더 확장될 수 있는 틈이다. 무한한 가능성의 틈,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행위를 하는 것. ( ), making.
( ), 그 공허하고 무한한 틈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. 이제 우리는 print 위에 덧씌워진 틈과 그 틈을 만드는 행위, making에 집중하고자 한다. 이번 전시에서 21인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져 놓은 틈 안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.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, 미지의 틈을 찾기 위한 그들의 여정이 한데 모여 이번 전시를 만들었다. 여정에 함께 하며 그 틈을 엿보게 될 당신도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의 태동을 마주하길 바란다.